강병선 시조시인은 회갑이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자아실현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다. 또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뜻을 전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시조 200수를 메일로 받아 읽어보니, 그중에 가장 많은 작품 속에 흐르는 큰 줄기는 시간을 아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많은 작품은 정치 평론 같은 글이었다.
정치가라면 정치적인 소신은 좋으나 정치적 흐름을 문학작품에 녹이는 것은 다음 기회에 하면 좋겠다고 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에서 정치(Politics)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정치는 더러운 거래다(Politics is a dirty business)”라는 예문을 보고 나는 정치에 대한 거리감을 두게 되었다.
물론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에 대해서 “노래는 그를 정치로 이끌었고, 정치는 그가 노래 창작 재능을 펼치게 해주었다”는 말이 있듯이 시조창작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 비판만으로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없을 것이다. 큰 흐름으로 이끌어 내는 정신으로 숙성시킨다면 가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태어난 고향 순천과 삶의 텃밭이 된 진주가 그 배경이다.
강병선 시조시인의 가장 크게 다룬 주제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마디로 말한다면 “촌음을 아껴 쓰라”는 한마디다. 자신보다 앞서가는 시간을 아쉬워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1분 1초는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안타까워한다. 여생에 대한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다짐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많이 나온 주제는 ‘가족 사랑’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찰이 대부분이다. 수없이 많은 시조가 부모님 그리고 큰누님을 그리는 작품이다.
세 번째 주제는 다시 정치적인 작품을 재정리한다는 전제하에 고향과 인생 제2막을 노래하는 고향 순천과 진주를 주제로 하고 있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물려 준 가난이 자신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회한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70대는 물론 60대에도 학교도 제대로 못 가는 것은 물론 밥만 먹여주면 식모살이도 마다하지 않았던 시대의 삶이 어찌 아름답다 하겠는가! 60년대는 아프리카의 가나 수준이었다. 이런 고난을 딛고 전남 순천에서 경남 진주로 이주했다. 지금은 문학세계에 진입하였으니 참으로 대단한 열정과 노력이 있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진주에 첫눈>, <진주 남강> 그리고 <유등> 등 작품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