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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병대의 뿌리 신현준
  지은이 김선덕
  출판사 지식공감
  판형 152x210
  발행일 2018. 04.
  정가 13,000원
  ISBN 979-11-89163-00-6



‘해병대의 뿌리, 신현준’은 초대 해병대사령관 신현준(申鉉俊) 장군의 치열했던 삶을 다룬 평전(評傳)이다. 1949년 2월 1일, 초대 해군총참모장 손원일 제독이 신현준 중령을 해병대사령관에 임명하고 해병대를 창설하라고 지시했다. 부대를 만들기 전에 사령관부터 임명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신현준은 부대의 위치, 병력, 무기, 보급품 등 모든 창설 업무를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이렇듯 해병대 창설이 신현준 한 사람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후일 ‘대한민국 해병대는 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경상북도 금릉(현재의 김천)에서 가난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신현준은 처절할 정도의 가난을 겪으며 성장했다. 극심한 궁핍에 시달리던 신현준의 아버지는 신현준이 네 살 때인 1919년, 식솔을 이끌고 만주로 이주했다. 하지만 이국땅인 만주에서의 생활은 고향보다 더 힘들었다. 신현준 가족은 만주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소작 농사를 지었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1928년에는 가족 모두가 하얼빈 시내에 설치된 빈민구제소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도 신현준의 아버지는 필사적으로 자식을 교육시켰다. 이 덕분에 신현준은 하얼빈보통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킨 일본이 조선에 이어 만주까지 집어삼켰다. 만주를 손에 넣은 일본은 1932년 3월 1일,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건국했다. 그해, 신현준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하얼빈에 진출해 있던 일본군 부대에서 통역 일을 하게 된다.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서였다. 1934년, 신현준이 전속으로 통역을 했던 일본군 장교가 만주군 수석고문으로 전출을 가게 됐다. 만주군으로 옮겨가 통역 일을 계속하던 신현준은 만주군 군관학교인 봉천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한다. 장교가 되어 좀 더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서였다. 1936년 4월, 봉천군관학교 제5기 군관후보생 시험에 합격한 신현준은 만주군 장교로 변신하게 된다.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1937년 7월, 일본은 만주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까지 침략하여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1941년 12월에는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스스로 파멸의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결국 일본은 연합국 측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한반도는 광복을 맞이했다. 당시 만주군 상위(대위)였던 신현준은 한동안 광복군 평진대대 대대장으로 복무하다가 1946년 5월에 부산으로 귀국했다. 그해 6월에 해군의 전신인 조선해안경비대에 견습사관(見習士官)으로 입대한 신현준은 11월 21일, 부위(중위)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해군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1949년 2월 1일, 해병대사령관에 임명된 것이다. 1949년 4월 15일, 드디어 진해 덕산비행장(德山飛行場)에서 장교 26명과 하사관 54명, 사병 300명, 총 380명으로 편성된 해병대가 창설식을 가졌다. 창설식이 끝난 후의 기념행사부터 해병대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간부와 사병 전원이 완전군장을 하고 해발 500m의 천자봉(天子峰) 정상까지 행군을 한 것이다. 시작부터 남달랐던 해병대는 6·25전쟁 중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1950년 8월, 북한군 7사단 선발대가 경남 통영까지 밀고 내려왔다. 8월 17일, 김성은이 지휘하는 1개 대대의 해병대가 통영에 상륙하여 북한군 7사단 선발대를 궤멸시켰다. 이 작전으로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951년 6월에는 강원도 도솔산지구를 배경으로 공방을 벌인 도솔산전투에서 ‘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북한군이 24개의 요새를 구축한 도솔산지구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 해병 1사단도 탈환에 실패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런 곳을 한국 해병 1연대가 단 보름여 만에 탈환하자, 이에 감동한 이승만 대통령이 해병 1연대에게 ‘무적해병’이라는 휘호를 내린 것이다. 무(無)에서 시작하여 ‘귀신 잡는 해병’을 창조한 신현준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무공훈장 중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수훈했다. 대한민국 군인들 중 태극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수훈한 사람은 신현준 장군이 유일하다.

김선덕(金善德)

1961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국방일보 기자로 7년, 국군영화 감독으로 10년,

그리고 국방TV PD로 13년, 도합 30년 동안

오로지 군 매체에서 봉직





저서

『실록 대한민국 국군 70년, 本紀 上』

『실록 대한민국 국군 70년, 本紀 下』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 함명수』 列傳

『무적해병의 전설, 공정식』 列傳

『마지막 기병대장, 장철부』 列傳

『육군의 산파역, 이응준』 列傳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列傳

‘대한민국 해병대는 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해병대가 창설되기 전에 먼저 사령관부터 임명하고, 그 사령관에게 알아서 부대를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뿌리인 ‘하나’가 바로 신현준(申鉉俊) 장군이다.

 ‘해병대의 뿌리, 신현준’은 초대 해병대사령관 신현준 장군의 치열했던 삶을 다룬 평전(評傳)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신현준 개인의 삶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복잡다단했던 20세기 초 동북아의 상황을 다룬 이 책의 전반부는 마치 대하소설을 읽는 것 같은 감흥을 주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씨줄로 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주인공들의 증언(회고록들과 평전들)을 날줄로 하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한다.

 책의 후반부는 창군과 6·25전쟁이라는 방대한 역사를 한 눈에 조망하게 해준다.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주요 사건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국방역사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놀라울 따름이다.

 또한 이 책에는 수많은 역사적 비화(祕話)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하고 있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수많은 관련 사진과 도표들을 곁들여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돋보이는 부분은 인간 신현준의 진솔한 모습을 객관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이다.

 ‘해병대는 막강하다.’는 선입견 때문에, 사람들은 신현준 장군이 불같은 성격의 용장(勇將)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신현준 본인이 쓴 회고록 ‘老海兵의 回顧錄’, 다른 장군들이 남긴 회고록들, 그리고 각종 공간사(公刊史)들에 등장하는 신현준이라는 인물은 다정하고 인자한 성품을 지닌 덕장(德將)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 신현준은 군인보다는 학자나 종교인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사에 성실하고, 진지하며, 자기 임무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또한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는 효자였으며, 자식들을 끔찍하게 아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런 성품이 그를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이끌었을 것이다.

 신현준은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군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군인이었으며, 군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도 치부(致富)와 축재(蓄財)를 하지 않은 청빈한 공직자였다. 또한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산 참 종교인이기도 했다.

 만주군으로 복무했던 신현준 장군에게는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닌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군 최고의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수훈(1952년 10월과 1953년 10월)한 국가 유공자라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군인들 중 태극무공훈장을 두 번이나 수훈한 사람은 신현준 장군이 유일하다. 분명한 것은 신현준 장군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군을 지극히 사랑했던 해병대의 대부(代父)라는 사실이다.

 ‘해병대의 뿌리, 신현준’은 국군 장병은 물론이고,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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