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채우려 하면 할수록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다가설수록 멀어지는 신기루 같은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지치게 하였습니다.
나이 오십을 넘기면 하늘의 命을 안다는 진리를 몸소 깨우치기엔 부족함을 실감합니다.
조악한 언어의 나열로라도 위로받고 싶은 충동을 어쩌지 못하고 내뱉게 되었습니다.
바람 소리 하나에도 신이 있다는 경외감을 조금씩 더듬어 봤습니다.
세상살이 이치를 다 꿰뚫고 말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를 반성하고서야 사람 앞에서 더 부끄러워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홍수에 몸을 던져 피붙이를 구한 모성의 강함을 남긴 채 다섯 살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가 버린 어미.
머리 희끗한 나이가 되고도 사무치는 그리움이 저를 질기게 따라다녔습니다.
운명은 새벽처럼 소리 없이 찾아오나 봅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리라는 몸부림이 소용없었습니다.
검은 그림자가 문 앞에 들어섰습니다.
13년의 긴 투병 가운데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았던 옆지기가 꽃향기 만발하던 봄날에 훌쩍 떠났습니다.
허공에 부질없이 쓴 편지들을 모아봤습니다.
답장이 오지 않을 편지입니다.
하지만 기대하지도 않던 답장은 봄 꽃망울에, 여름 장맛비에, 빛바랜 은행잎 한 장에, 나부끼는 눈발 속에,
때가 되면 어김없이 배달되었습니다.
박화진
박화진은 대구에서 태어나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31년째 경찰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대에 교통사고로 장기간 병상 생활을 했고, 40대에 양이(兩耳) 중도난청(中度難聽)에 시달렸으며, 50대에 30년 인연의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웃음의 미학을 터득하고 삶과 자연에 대한 경건한 마음을 한 줄 한 줄 노래하며 살아가고 있다.